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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운송 창고에서 찾아낸 조선어큰사전 2019-10-08
(CJ대한통운 80년 사사 中)

"조선운송창고에서 찾아낸 보물" (1945)



해방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45년 9월 8일, 경성역(지금의 서울역) 조선운송 창고를 뒤지던 학생들이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해방 후 행방을 몰라 애태우던 <조선어큰사전>의 원고 뭉치였습니다.

1942년 10월 1일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사전 편찬 작업에 참여했던 학회 회원들이 함경도 함흥과 홍원에서 투옥된 후 사전 원고는 경찰에 압수돼 함흥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예심(1심) 재판의 증거물로 제출됐습니다. 이들 가운데 징역형을 받은 네 사람이 항소를 했는데, 이때 경성고등법원으로 사건이 옮겨지면서 관련 서류와 증거물도 같이 서울로 보내졌습니다.

그러나 증거물 가운데 <조선어큰사전>의 원고 뭉치가 들어 있던 상자는 법원에 전달되지 않았고, 경성고등법원은 해방 사흘 전인 1945년 8월 12일 상고 기각 판결을 내립니다. 이틀 뒤 해방이 되면서 8월 17일 함흥 감옥을 나선 학자들은 8월 19일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서울에 모인 학자들이 3년 전 경찰에 압수된 원고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중, 경성역 뒤 조선운송 창고에서 인부들과 함께 화물을 살펴보던 역장이 상자속의 원고 뭉치를 발견하고 학회 측에 이를 알린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빛을 보게 된 <조선어큰사전> 원고는 1947년 10월 9일 한글날 기념식에 맞춰 첫 번째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사전 편찬에 참여한 김병제 님은1946년 <자유신문>에기고한 글에서 “원고 상자의 뚜껑을 여는 이의 손은 떨리었다. 원고를 드는 이의 눈에는 눈물이 어리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기차가 가장 빠르고 안전한 운송 수단이었던 그 시절, 세상의 모든 짐들은 철도역 가까이 있던 조선운송의 창고에 먼저 맡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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