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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MBLEM

    90주년 엠블럼을 소개합니다.
    CJ대한통운 90주년 엠블럼
    LOVE JOY HAPPINESS

    CJ대한통운은
    사랑, 기쁨, 행복을 전하는 반가운 전달자입니다.
    미소와 함박웃음을 연상케하는 디자인으로 친근한 모습을 표현했으며,
    다채로운 컬러 조합으로 사랑스러움과 기쁨을 강조했습니다.

  • HISTORY

    대한민국 물류
    최초이자 최고의 역사,
    CJ대한통운 90년

    사진으로 보는 역사

    • 1930~1983
    • 1984~1996
    • 1997~2013
    • 2014~Now
    1930~1983 대한민국 물류의 탄생 1930년 창립된 조선미곡창고, 조선운송
    대한민국 물류 새벽을 연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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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 대한민국 물류 새벽을 열었습니다.
    모든 차량은 조선 운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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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5 인천항, 많은 이들의 꿈과 희망을 현실로 이어주는 곳
     인천항, 많은 이들의 꿈과 희망을 현실로 이어주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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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2 택배의 초기 모습인 택급제 서비스 시작
    미창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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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 삼륜차를 처음 사던 날
    삼륜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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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 대한민국 통관업의 역사가 된 대한통운협진
    대한통운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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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 컨테이너가 처음 들어오던 날
    컨테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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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 항공 포워딩의 최강자, 대한통운항공화물
    항공 포워딩 업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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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 인천항에 전용 부두를 만들다
    인천항 전용 부두
    1984~1996 대한민국 물류 혁신의 시작 물류 솔루션으로 한 발 앞선 물류 시대를 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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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 소화물취급소에 가보셨죠?
    1984년 10월 1일 대한통운은 서울 지역에 한해 소화물 집화 배달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도입한다고 발표하면서 서울역을 중심으로 한 집배 서비스 시작되었다.
    소화물 취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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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 부두의 모습을 바꾸다.
    1974년 5월 인천항에 대한통운 민자 부두가 들어선 후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들여온 갠트리 크레인은 수출의 역군이라도 되는 듯 뉴스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고, 1986년 인천항에 이어 1987년 군산항에 건설된 양곡 사일로와 자동화된 하역 설비까지 항만하역 물류의 혁신 물류 역사 중 하나 입니다.
    갠트리 크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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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 복합 물류 터미널과의 첫 만남
    철도 운송과 도로 운송의 만남, 전국 물류 거점에 지역에 건설된 내륙 물류 기지로 화물 체계의 효율화를 주도하였다. (군포, 양산, 장성, 중부 터미널)
    복합 물류 터미널과의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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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 택배 사업 시작
    '대한통운특송'이라는 브랜드로 대한민국에 새로운 물류시장을 열다.
    택배라는 낱말이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현실을 감안해 1999년 하반기부터는 ‘대한통운택배’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택배 사업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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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 물류연구소 문을 열다.
    물류연구소 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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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 투 포트의 꿈을 실현하다
    투 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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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 해운업의 영광을 위하여
    해운업의 영광을 위하여
    1997~2013 CJ대한통운 통합의 탄생 물류 솔루션 혁신 CJ GLS와 대한통운이 CJ대한통운으로 통합
    대한민국 대표하는 종합물류 기업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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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 물류 솔류션 선두주자, CJ CLS㈜ 법인 설립
    첨단 물류 솔류션으로 한발앞선 물류 시대를 열어가는 CJ GLS 탄생했다.
    CJ G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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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 물류 솔류션 통합택배시스템, 창고관리시스템 구축
    물류 솔류션 통합택배시스템, 창고관리시스템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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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 리비아 리스크, 그 오랜 덫에서 벗어나다
    사막의 대장정을 땀으로 이끌며 대수로 공사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 사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사와 관련해 동아건설에 제공한 수천억 원의 지급보증 채무 문제를 부딪쳤을 때 회사의 존망을 결정할 리비아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대한통운의 모든 임직원은 필사의 각오로 문제 해결에 매달려 사막의 기적, 모래땅에서 채소와 곡물을 자라나게 했다.
    리비아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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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더 크게, 더 무겁게
    2,000톤, 길이 140m에 폭 20m, 높이 10m로 45층 빌딩과 맞먹는 크기의 마산과 창원 간을 연결하는 마창대교의 상판 구조물 이동은 섬세하면서도 철저한 시뮬레이션이 되어야 하는작업이다.
    2006년 이후 대한통운은 거의 매년 더 크고 더 무거운 중량물 운송 기록을 경신하며 사업 발전을 리딩 하고 있다. 끊임없는 기록 경신은 그 자체가 지속적이고도 철저한 품질 관리와 한계에 도전하는 불굴의 도전 정신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중량물 운송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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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국내 최대의 복합 물류 터미널을얻다
    한국복합물류터미널의 대한통운 편입은 육상 운송 부문에서 최대의 네트워크 와 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일반화물 2만 9,000톤, 컨테이너 1,000TEU라는 최대의 일시 수송 능력의 인프라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철도 물류 노하우를, 전국 주요 무역항 대부분에서 사업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륙 복합 물류 네트워크 구축에 기반을 다졌다.
    국내 최대의 복합 물류 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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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아시아 택배의 랜드마크 대전 허브터미널 오픈
    당시 인터넷 쇼핑몰의 확대, 택배 물량의 급성장으로 연간 2억 상자 시대를 맞아 축구장10개가 들어가는 최신 자동 화물분류기를 도입 하루에 60만 상자 이상의 택배 화물을 분류할 수 있는 아시아권 택배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대전 허브터미널을 구축 하였다.
    대전 허브 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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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중량물 전용선, 세계로 가는 뱃길을 엽니다.
    중량물사업이 차세대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전망으로 초대형 중량물 전용 자항선 확보, 글로벌 중량물 전문기업으로 가는 뱃길에 성큼 다가서게 되었습니다.
    중량물 전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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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2010년 11월 국내 택배업계 최초로 연간 택배 화물 취급 수량 2억 상자를 돌파했습니다. 1993년 택배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지난 2007년 11월 업계 최초로 1억 상자를 돌파한 지 불과 3년 만에 이룬 쾌거였습니다.
    업계 최초 택배, 2억 상자를 돌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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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대한민국의 대표 물류 회사 대한통운과 CJ GLS가 CJ대한통운으로 통합
    도전과 혁신으로 물류산업의 역사 써왔으며, 첨단 융복합기술개발, 지속적인 투자, 성장전략추진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글로벌 네트워크/사업을 확대하여 글로벌 종합물류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을 기반으로 CJ대한통운은 향후 세계 물류시장을 선도하는 글로벌 혁신물류기업으로 나아가는 힘찬 발걸음을 시작 합니다.
    대한통운
    2014~Now 혁신으로 만드는 물류 4.0 시대 육상, 해상, 항공 어디서나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기 위해 끊임없는 혁신하며,
    선진 물류시장 진출, 최첨단 물류 인프라 구축, R&D투자를 토대로 글로벌 혁신물류기업으로 나가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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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CJ대한통운 종합물류연구원 승격
    CJ대한통운 종합물류연구원 승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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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실버택배사업 시니어 일자리 1,000개 돌파
    실버 택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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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글로벌 사업을 보다 강화하기 위하여,해외 진출시 확장성을 고려하여 54년간 사용해온 글로벌 사명을 CJ koreaexpress에서 CJ Logistics로 변경하였다.
    글로벌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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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中 상해 TES 센터 개관
    첨단 기술 및 물류 컨설팅을 활용한 중국 현지 맞춤형 마케팅을 진행하고 차별화된 서비스 제공으로 중국 물류 브랜드 이미지와 가치를 높이기 위해 TES 센터 개관하였다
    첨단 R&D센터 개관을 통해 CJ대한통운의 글로벌 물류 역량을 한 단계 높여 중국 물류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는 모멘텀을 마련 하였다.
    中 상해 TES 센터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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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아시아 최대 규모의 CJ대한통운 메가허브 곤지암 오픈
    연 면적 축구장 40개 넓이와 맞먹으며 화물처리용 컨베이어벨트의 길이는 마라톤코스인 43km가량을 넘어서며, 종합물류연구원이 개발한 첨단 불류, 포장 기술솨 로봇 등 첨단 물류 기술을 도입하였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CJ대한통운 메가허브 곤지암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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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곤지암에 이어, 가속화되는 물류시장에 발 맞추어 축구장 58개 규모의 아시아 최대 물류센터를 구축 하였습니다.
    (동탄+양지)
    산업별 특성을 살린 온도 융복합, CPG, Retail, 제약 산업군 취급
    등 산업별 맞춤형 최첨단 물류 기술 기반 Smart 자동화 센터로 물류 업의 패러다임을 만들어 갑니다.
    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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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최첨단 물류기술 개발을 통해 물류 프로세스의 혁신을 준비 하는 TES Innovation Center Korea(동탄) 개관
    TES Innovation Center Korea(동탄) 개관
  • STORY

    더 편리하고 즐거운 삶을 만들어온
    CJ대한통운의 이야기
  • CJ대한통운 90주년 이벤트 - 1탄
조선미곡창고
1930

대한민국 물류의 원조 CJ대한통운 전신, 조선미곡창고 주식회사 1930년 11월 15일 업무 시작

조선미곡창고
1930

또 하나의 CJ대한통운 전신인 조선운송주식회사 1930년 4월 1일 문을 열고 물류전문 회사로 성장하였다.

1940
1940

전국 육상 운송 업계 천하 통일
모든 차량은 조선운송으로 조선운송 동북아 굴지의 물류회사가 되었다.

조선어 사전
1945

조선운송 창고에서 찾아낸 보물
1929년부터 시작된 조선어사전 편찬 작업의 결실인 원고지 2만 6,500여 장 분량의 원고 뭉치가 경성역 조선운송 창고에서 발견됨으로써 경찰에 압수당한 지 3년 만에 학회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국미곡창고주식회사
1950

미창, 상호를 한국미곡창고주식회사(한국미창)로 개칭

인천항1
1955

인천항, 많은 이들의 꿈과 희망을 현실로 이어주는 곳으로 최대의 수출입항 인천항 관수 및 민수 물자 하역 전담하였다.

증권시장
1956

3월 개장한 증권거래소에 12개 국책 회사와 함께 주식 상장하였다.

증권
1956

조선운수의 종목 코드 000120은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미창로고
1957

조운, 상호를 한국운수주식회사(한운)로 변경
조선운송운은 안에 별 을 상징하는 점이 들어간 심벌 마크를 창립 이래 줄곧 사용하던 중, 1958년 9월 사명
을 한국운수로 바꾸는 과정에서 일본어를 연상시키는 기존의 마크를 버리고 도로와 철도를 형상화한 새 심벌 마크를 채택하였다.

한국운수주식회사
1962

한국운수㈜ 인수합병, 한국미곡창고㈜로 상호 변경
국영기업체 및 정부 관리기업의 기능 통폐합 방향에 따라 창립이후 치열한 경쟁관계였던 한국미창과 한국운수 합병은 자산형 기업인 한국미창이 한국운수를 삼키게 되다.

한국미곡창고(주)
1962

장경순 농림부 장관이 1월 8일자로 “미창은 한운을 흡수 신발족하게 되었다”고 발표하였다.

미스터 미창
1962

택배의 초기 모습인 택급제 서비스 시작
산업박람회 시간 처음 시작된 미창맨은 시민들이 구입한 각종 물품등을 원하는 곳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미스터 미창
1962

2월 15일 어깨에 번호가 새겨진 노란색 상의 차림에 모자를 쓴 미스터 미창이 서울과 부산에 등장했습니다. 미창맨이라고도 알려졌던 이들은 당시 한국미창이 서울과 부산에 설치한 중앙하급소(화물취급안내소)에서 철도 소화물과 이삿짐 등을 운송해주는 업무를 담당하던 이들로, 요즘 개념으로 보면 택배 기사와 비슷한 역할을 하던 이들이었습니다.

대한통운 야구
1962

대한통운 야구, 실업연맹전에서 우승
프로야구 출범하기 전 성인 야구의 중심 실업야후,1946년 실업야구연맹이 창립된 첫해 부터 참가하여 스포츠에 짜릿함을 이어갔다.

대한통운 상호변경
1963

미창과 한운,대한통운으로 다시 태어나다
영문 상호를 The Korea Express Company Ltd.로 변경
국책 회사로 출발한 두 회사는 이제 새로운 단일 국영기업으로 재탄생했다. 빠른 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한 우리 산업계의 물류 수요에 적극 대응하고, 국가 경제 성장의 핵심 인프라인 물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발걸음 이였다.

이삿짐도 원조입니다.
1964

대한민국 이삿짐 서비스 원조입니다.

삼륜차를 처음 사던 날
1965

삼륜차를 처음 사던 날
산업의 발전과 함께 성장하는 물류 역할을 위해 해외 자동차 회사에서 대량의 최신형 장비를 적극 도입하기 시작 하였다.

삼륜차를 처음 사던 날
1965

단거리 화물 운송 능력을 획기적으로 끌어 올려서 폭하는 공로 운송 등의 물류 수여에 적극적으로 대처

대한통운협진
1965

대한민국 통관업의 역사가 된 대한통운협진
국내 유일의 통관법인으로 통관과 보세 운송, 항만 하역 관장하는 통관업의 역사가 시작 되었다.

통관업의 역사
1966

대한통운경남기업, 베트남에서 보낸 80개월
CJ대한통운 전신인 대한통운은 경남기업과 함께 ‘대한통운경남기업’을 설립하고 베트남의 군수물자 하역사업에 진출했다.

통운11호
1966

중량물 운송의 개척자 통운11호
바지선인 통운 11호로 한국비료 울산공장까지 당시 동양 최대의 초중량품인 175톤 탄산가스 재생탑을 수송, 내일의 번영을 실어 나르는 중량물 운송으로 대한민국 발전을 나르게 되었다.

통운11호
1966

사상 최대 규모였던 이 발전기 수송 작전 이후 중량품 운송에서 최강의 실력을 공인받게 됐고, 특히 발전 설비의 수송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확고한 입지를 굳히게 됐습니다.

동명증권(동아건설)그룹 편입
1968

대한통운 국영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동명증권(동아건설)그룹 편입

당인리화력발전소 5호 발전기
1968

대한통운 초대형 트레일러로 에너지를 실어나르다.
전체 중량 351톤 당인리화력발전소 5호 발전기 수송 발전 설비의 수송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확한한 임지를 굳히다.

당인리화력발전소 5호 발전기
1968

무게가 175톤으로 당시 동양 최대의 중량 화물이었다. 오른쪽은 트레일러와 함께 자체 제작한 250톤급 바지선 통운11호 바지선을 이용한 대한통운의 중량품 해상 운송 기록은 그 후에도 계속해서 새롭게 작성되고 또 갱신돼나갔습니다.

컨테이너가 처음 들어오던 날
1970

컨테이너가 처음 들어오던 날
무역에 상징 컨테이너는 1970년 3월 2일이 우리나라 부두에 처음으로 화물 컨테이너가 내려 지게 된 이후, 이후 대한민국 경제의 최첨단을 지키는 물류산업의 보물로 자리잡게 되었다.

항공 포워딩 업무 시작
1972

항공 포워딩의 최강자, 대한통운항공화물
김포에서 미국으로 직접날라가는 화물운송 시작
1973년 3월 미국의 슐만에어프레이트사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항공 포워딩 업무를 시작한 대한통운항공화물은 기존 항공 운송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꿧다

인천항 전용 부두
1974

인천항에 전용 부두를 만들다
인천항에 대규모 전용 부두를 갖게 된 대한통운은 하역과 보관의 현대화를 통해 수준 높은 서비스를 창출함으로써 우리나라 항만 개발의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 마련하였다.

컨테이너 전용 열차
1975

컨테이너를 싣고 철길을 달리다
철도화물 수송 근대화를 위해 처음으로 도입한 이 컨테이너 전용 열차는 도입으로, 국내 최초로 철도를 이용한 유럽행 수출 화물 수송 루트를 개척까지이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