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J대한통운은
사랑, 기쁨, 행복을 전하는 반가운 전달자입니다.
미소와 함박웃음을 연상케하는 디자인으로 친근한 모습을 표현했으며,
다채로운 컬러 조합으로 사랑스러움과 기쁨을 강조했습니다.

대한민국 물류의 원조 CJ대한통운 전신, 조선미곡창고 주식회사 1930년 11월 15일 업무 시작

또 하나의 CJ대한통운 전신인 조선운송주식회사 1930년 4월 1일 문을 열고 물류전문 회사로 성장하였다.

전국 육상 운송 업계 천하 통일
모든 차량은 조선운송으로 조선운송 동북아 굴지의 물류회사가 되었다.

조선운송 창고에서 찾아낸 보물
1929년부터 시작된 조선어사전 편찬 작업의 결실인 원고지 2만 6,500여 장 분량의 원고 뭉치가 경성역 조선운송 창고에서 발견됨으로써 경찰에 압수당한 지 3년 만에 학회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미창, 상호를 한국미곡창고주식회사(한국미창)로 개칭

인천항, 많은 이들의 꿈과 희망을 현실로 이어주는 곳으로 최대의 수출입항 인천항 관수 및 민수 물자 하역 전담하였다.

3월 개장한 증권거래소에 12개 국책 회사와 함께 주식 상장하였다.

조선운수의 종목 코드 000120은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조운, 상호를 한국운수주식회사(한운)로 변경
조선운송운은 안에 별 을 상징하는 점이 들어간 심벌 마크를 창립 이래 줄곧 사용하던 중, 1958년 9월 사명
을 한국운수로 바꾸는 과정에서 일본어를 연상시키는 기존의 마크를 버리고 도로와 철도를 형상화한 새 심벌 마크를 채택하였다.

한국운수㈜ 인수합병, 한국미곡창고㈜로 상호 변경
국영기업체 및 정부 관리기업의 기능 통폐합 방향에 따라 창립이후 치열한 경쟁관계였던 한국미창과 한국운수 합병은 자산형 기업인 한국미창이 한국운수를 삼키게 되다.

장경순 농림부 장관이 1월 8일자로 “미창은 한운을 흡수 신발족하게 되었다”고 발표하였다.

택배의 초기 모습인 택급제 서비스 시작
산업박람회 시간 처음 시작된 미창맨은 시민들이 구입한 각종 물품등을 원하는 곳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2월 15일 어깨에 번호가 새겨진 노란색 상의 차림에 모자를 쓴 미스터 미창이 서울과 부산에 등장했습니다. 미창맨이라고도 알려졌던 이들은 당시 한국미창이 서울과 부산에 설치한 중앙하급소(화물취급안내소)에서 철도 소화물과 이삿짐 등을 운송해주는 업무를 담당하던 이들로, 요즘 개념으로 보면 택배 기사와 비슷한 역할을 하던 이들이었습니다.

대한통운 야구, 실업연맹전에서 우승
프로야구 출범하기 전 성인 야구의 중심 실업야후,1946년 실업야구연맹이 창립된 첫해 부터 참가하여 스포츠에 짜릿함을 이어갔다.

미창과 한운,대한통운으로 다시 태어나다
영문 상호를 The Korea Express Company Ltd.로 변경
국책 회사로 출발한 두 회사는 이제 새로운 단일 국영기업으로 재탄생했다. 빠른 속도로 팽창하기 시작한 우리 산업계의 물류 수요에 적극 대응하고, 국가 경제 성장의 핵심 인프라인 물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발걸음 이였다.

대한민국 이삿짐 서비스 원조입니다.

삼륜차를 처음 사던 날
산업의 발전과 함께 성장하는 물류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해외 자동차 회사에서 대량의 최신형 장비를 적극 도입하기 시작 하였다.

단거리 화물 운송 능력을 획기적으로 끌어 올려서 폭하는 공로 운송 등의 물류 수여에 적극적으로 대처

대한민국 통관업의 역사가 된 대한통운협진 설립
국내 유일의 통관법인으로 통관과 보세 운송, 항만 하역 관장하는 통관업의 역사가 시작 되었다.

사상 최대 규모였던 이 발전기 수송 작전 이후 중량품 운송에서 최강의 실력을 공인받게 됐고, 특히 발전 설비의 수송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확고한 입지를 굳히게 됐습니다.

무게가 175톤으로 당시 동양 최대의 중량 화물이었다. 오른쪽은 트레일러와 함께 자체 제작한 250톤급 바지선 통운11호 바지선을 이용한 대한통운의 중량품 해상 운송 기록은 그 후에도 계속해서 새롭게 작성되고 또 갱신돼나갔습니다.

대한통운경남기업, 베트남에서 보낸 80개월
CJ대한통운 전신인 대한통운은 경남기업과 함께 ‘대한통운경남기업’을 설립하고 베트남의 군수물자 하역사업에 진출했다.

중량물 운송의 개척자 통운11호
바지선인 통운 11호로 한국비료 울산공장까지 당시 동양 최대의 초중량품인 175톤 탄산가스 재생탑을 수송, 내일의 번영을 실어 나르는 중량물 운송으로 대한민국 발전을 나르게 되었다.

대한통운 국영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동명증권(동아건설)그룹 편입

대한통운 초대형 트레일러로 에너지를 실어나르다.
전체 중량 351톤 당인리화력발전소 5호 발전기 수송 발전 설비의 수송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확한한 임지를 굳히다.

컨테이너가 처음 들어오던 날
무역에 상징 컨테이너는 1970년 3월 2일이 우리나라 부두에 처음으로 화물 컨테이너가 내려 지게 된 이후, 이후 대한민국 경제의 최첨단을 지키는 물류산업의 보물로 자리잡게 되었다.

항공 포워딩의 최강자, 대한통운항공화물
김포에서 미국으로 직접날라가는 화물운송 시작
1973년 3월 미국의 슐만에어프레이트사와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항공 포워딩 업무를 시작한 대한통운항공화물은 기존 항공 운송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꿧다

인천항에 전용 부두를 만들다
인천항에 대규모 전용 부두를 갖게 된 대한통운은 하역과 보관의 현대화를 통해 수준 높은 서비스를 창출함으로써 우리나라 항만 개발의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 마련하였다.

컨테이너를 싣고 철길을 달리다
철도화물 수송 근대화를 위해 처음으로 도입한 이 컨테이너 전용 열차는 도입으로, 국내 최초로 철도를 이용한 유럽행 수출 화물 수송 루트를 개척까지이어지게 되었다.

